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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5. 27. 20:39
한탕 노린 '고의 부도'에 용산전자상가 휘청
오마이뉴스  기사전송 2008-05-27 17:24 

[오마이뉴스 안호덕 기자]

▲ 텅빈 전자상가 토요일 오후, 한참 붐벼야 할 시간임에도 상가 전체가 텅비어 있다.
ⓒ 안호덕

'경제'만이라도 살릴 것이라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서민 경제는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고유가에 치솟는 물가, 실업난의 가중, 고용의 불안정성 심화는 '3개월이 3년 같다'는 불안한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식당이 문을 닫고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있다. 전자와 컴퓨터의 메카라던 용산전자상가도 예외는 아니다.

매출의 극감으로 울상짓고 있는 상가에 악의적인 고의 부도가 이어지고 있어 자칫 용산전자상가 전체가 몰락할지 모른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3월 하순경 용산에서 3대 쇼핑몰 중 하나였던 이지가이드가 부도를 내더니 지난 주에는 인터넷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업체 몇 군데가 연쇄적으로 부도를 냈다. 매일 한 건씩 터지는 꼴이다.

이런 악의적 부도는 소비자의 피해도 간과할 수 없지만 물건값을 떼인 도매업자의 피해는 더욱 크다. 3월에 부도 낸 이지가이드의 경우, 미수 채권 규모가 40억에서 많게는 90억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물건을 공급한 도매업자의 경우 수천 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돈을 못 받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몇억의 외상값을 받을 길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부도가 발생하면 수습은 거의 불가능하다. 채무를 해결해야 할 부도업자가 돈을 챙겨 외국으로 도주해 버린 경우가 많고 국내에 남아 있더라도 잠적해 버리면 그만이다. 또 고의 부도인 경우 이미 재산을 숨겨 놓았거나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명의변경해서 압류 등 강제 집행을 할 수 없도록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대부분의 영세한 자영업자는 법률적 지식도 없고 받아 낼 보장도 없는 사건에 거액의 변호사 비용도 대기 어려워 포기하고 만다. 상인 간에는 떼인 돈을 일컬어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오간다.

천 원만 비싸도 한 대도 못 파는 온라인 시장

이런 악의적인 고의 부도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는 몇가지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우선, 경기침체로 인해 수요가 극감했다는 요인이 있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특히 고가로 인식되는 컴퓨터와 주변기기가 경기 상황에 가장 민감한 쪽이라 할 수 있다. 컴퓨터를 바꾸고 싶어도 돈이 없거나 경기가 불안하니까 기다렸다 사자는 추세가 아주 강하다.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자의 불안 심리가 매출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둘째, 인터넷 비교 사이트·홈쇼핑·쇼핑몰·대형마트의 등장은 극한 가격 경쟁을 불러 왔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수십 군데 가격을 비교해서 사는 구매 패턴의 변화는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싼 가격을 내 놓지 못하면 하나도 팔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130만원하는 노트북이 가장 싼값을 제시하면 하루에 수십 대를 팔 수 있지만 천 원만 높게 제시해 놓으면 한 대도 팔리지 않는 게 비교 사이트를 위시한 온라인 시장의 현실이다.

이런 치열한 가격 경쟁은 각종 문제점을 유발한다. 대자본인 홈쇼핑·대형쇼핑몰과 자영업자의 경쟁은 출발선이 다르다. 같은 물건이라도 매입 원가가 다른 것이다. 막대한 자본으로 무장한 대형 홈쇼핑과 쇼핑몰은 자영업자들이 매입하는 원가보다 더 싸게 물건을 파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비자의 입장에서야 나쁘지 않는 일이지만 자영업자는 최소한 마진(이윤)조차 포기해야 하고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편법까지 동원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다.

최소한 마진도 포기하고 현금 만들기 위해 원가 이하로 팔아

가장 싼 가격을 제시해야 물건을 팔 수 있고,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마진도 포기해야 하는 온라인 시장. 그래서 매출이 늘어나도 수익은 거의 없는 구조가 고착화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인건비와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해 부도로 내몰린다. 이런 업자들 가운데 싸게 팔아서 매입 대금을 갚지 않고 도주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더 악의적인 경우는 현금을 만들어 도주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원가 이하로 물건을 파는 경우도 있다.

상인들 간의 거래에서 피해는 소위 여신(외상)거래 때문에 발생한다. 물건을 넘겨주는 것과 동시에 대금이 지불되면 물품 대금을 떼이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물건과 돈을 교환하는 소위 현금거래는 거의 없다. 처음 거래야 현금이 간다손 치더라도 다음부터 다음날 결제, 거래량과 거래 기간에 따라 외상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모르는 사람은 '돈 받고 물건을 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는 모르는 소리다. 지금의 시장 구조상 현금을 요구하면 물건은 거의 팔리지 않는다. 파는 곳도 많고 물건도 넘쳐 나는데 꼬박꼬박 현금으로 물건을 사는 업체는 거의 전무하다. 도매업자는 물건을 팔기 위해 외상을 주고 많이 파는 업체에게는 더 싼 값으로 오랫동안 외상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시장 구조다. 시장 경기가 침체될수록 외상 규모나 기간은 더 늘어난다. 컴퓨터가 고가인 점을 감안하면 몇 천만원을 일주일 정도 외상주는 것은 그리 큰 규모도 아니다.

살 때는 외상, 팔 때는 현금...수십억 챙겨 도주하는 악의적 고의 부도

이에 반해 온라인 시장은 대부분 현금 거래다. 구매와 동시에 온라인 송금을 하거나 카드 결제를 해야 한다. 대형 쇼핑몰이 판매대행을 하더라도 일주일 정도면 판매한 금액이 통장으로 입금된다. 이런 유통 구조상 온라인에서 가장 싼 가격으로 물건을 판다면 큰 돈을 쉽게 만질 수 있다. 노트북 같은 고가의 상품을 유통하는 경우 며칠 만에 수억에서 수십억을 통장으로 모을 수도 있다. 이것을 대금 결제하지 않고 도주해 버리면 악의적인 고의 부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악의적 고의 부도가 용산전자상가에서 속출하고 있다. 지금 이곳에서는 어느 집에 당했다거나 어느 사장이 벌써 외국으로 도주했다는 등 별별 이야기가 횡행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상적인 마진 구조를 추구하는 영세 업체의 경우 줄줄이 도산할 수밖에 없다. 용산전자상가에는 빈 매장만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악의적 부도와 늘어나는 피해는 경기 침체와 맞물려 이제 시작에 불가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 수개월째 임대 문의 임대비와 관리비를 감당할 수 없어 빈 매장이 늘어나고 있다. 창고로 사용되기도 한다.
ⓒ 안호덕

경제 발전은 경제 정의가 우선...왜곡된 시장 구조 국가가 개입해야

시장의 다변화는 가격 경쟁을 불러온다. 이것을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싼 가격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이다. 그러나 대자본에서 촉발된 무한의 가격경쟁은 무작정 좋아할 일만도 아니다. 대자본과 경쟁에 밀린 영세 자영업자들이 줄도산하고 올바른 유통구조를 추구하면서는 경쟁의 출발선상에도 오를 수도 없는 것이 왜곡된 시장 경제 구조다. 700만에 이르는 자영업자들의 처지가 거의 비슷한 지경이다. 지역 경제가 무너지고 재래시장이 설 자리를 잃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제를 살리는 것은 경제의 정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장사가 안되니까,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으니까 원가 이하라도 팔아 몇 십억을 챙겨서 외국에 가서 잘 살자'는 생각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사회는 분명 문제 있다. 그러나 아직 그렇게 악의적인 고의 부도를 낸 사람들이 잡히고 처벌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몇 달 전 몇 천만원을 '비싼 수업료'로 지불한 한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남에게 10원 한푼 떼어먹은 적 없다'는 그는 "우리나라 법으로는 안 된다"고 (도망간 채무자에게) "살의를 느낀다"고 했다.

시장은 시장 스스로에게 맡기겠다는 현 정부의 경제 기조이다. 그러나 자율에 맡기는 것과 방임하는 것은 다르다. 가장 위의 논에서 가장 아래 논으로 호스를 이용하면 가장 편하고 빠를지 모르지만, 중간에 있는 논의 벼는 전부 말라 죽고 만다. 대자본은 적절한 수단으로 통제되어 자영업자가 고사 위기로 안 몰리도록 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식당이 문을 닫고, 용달 서비스가 차를 팔고, 영세상들이 폐업을 하면 결국 이들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넘볼 수밖에 없다. 고용 불안의 심화, 국가 경제의 황폐화는 이런 시장 구조에서 예견된 수순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수천 만원의 정당한 물품 대금을 뜯겨도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들에게 법률적인 자문을 하는 것도 정부의 일일 게다. 악의적인 고의 부도를 소탕하려면 국가 차원에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단지 거래 관계의 미수금 사건, 민사 사건으로만 보려한다면 악의적인 고의 부도는 근절될 수 없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서라도 악의적인 고의 부도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적극적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상인들은 경기 침체에서 악의적인 고의 부도나 도주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상가 전체가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의 고의 부도가 터져 나에게 피해가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상인들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크고 복합적이다. 정부의 빠르고 확실한 처방만이 몰락해 가는 용산전자상가를 살릴 수 있다.

Posted by 누려라